도현암

본문 바로가기

 

◎ 사주

사주란?

타고난 그릇이니 그릇의 크기가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써야 하고, 그릇의 쓰임새를 알아서 써야 하니, 보석함은 보석을 담고, 음식 그릇은 음식을 담아야 합니다. 인간의 운명은 틀로 고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희망이 있고 개선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 인간의 운명은 바꿀 수 없는 숙명이 있기 때문에 자제해야 하고, 분수를 알고 때를 알아야 합니다. 지혜로운 삶을 사는 방법은 인생 설계론에서 논합니다.

모순된 운명 철학

운명 철학은 "인간의 운명은 정해져 있다" 라는 전제하에 있습니다. 그러면 운명 철학은 "인생의 모든것이 정해져 있다"는 숙명론과 같은가? 그것은 아닙니다. 분명 피흉추길(避凶趨吉, 흉함을 피하고 길함을 선택함)을 추구하기 때문이지요. 여기에서 이율배반적인 모순이 생깁니다. 운명이 정해져 있는데 다시 그 운명을 피할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여기서 숙명론에 대해 생각해보면 "인생의 모든 것이 운명지워져 있다"는 생각은 폐해가 심각합니다. 나쁜 운명은 나쁠 것이기 때문에 희망이 없어 자포자기하고, 좋은 운명은 좋을 것이기 때문에 나태하고 타락하게 됩니다. 또한 악행을 보더라도 원래 정해진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개선할 의지를 갖지 않으며 선행을 하려는 의지도 갖지 않습니다. 보통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운명 철학을 부정합니다. 인간은 자유의지에 의해 과학적 사고로 미래를 개척하고 자연을 정복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역사는 계속해서 발전해나간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역사는 문명이 덜 발달하고 덜 성숙한 사회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해 운명을 개척한다는 생각은 몇 가지 질문만 하더라도 금방 그 한계가 드러납니다. 어떤 사람은 왜 부모를 잘 만나서 재물이 풍부하고 나는 왜 가난한가? 어떤 사람은 얼굴이 잘생겨서 남에게 호감을 갖는데 나는 왜 못생겨서 남에게 비호감인가? 어떤 사람은 건강한데 나는 왜 태어나면서부터 질병이 있거나 허약한가? 이런 선천적인 문제에서부터, 나는 죽을 고생을 하고 잠을 자지 않고 노력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성공하지 못하는데 또 어떤 사람은 별 노력 없이도 횡재하거나, 일이 잘풀려서 고생하지 않고 부유하게 사는가? 어떤 사람은 좋은 배우자를 만나서 알콩달콩 재미있게 잘 사는데... 나는 왜 만나는 사람마다 헤어지고 이별의 고통을 겪는가? 하는 후천적인 문제까지 다양합니다. 과학적사고와 합리적 이성을 중요시하고 자유의지를 말하는 사람들도 중요한 문제에 부딪히면 하나님과 부처님을 찾고 행운을 빌곤 합니다. 스스로 모순된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대체로 사람이 나이가 들면 운명에 대해 이해를 하곤 합니다. 젊은 사람들은 자신감과 패기로 살지만 인생의 풍파를 겪고 나면 생각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운명 철학은 40대 이상에 접어드는 사람이 많습니다. 모순된 듯 보이는 현상이 곧 인생입니다. 인생은 그 자체가 모순입니다. 그리고 혼란스럽고 모순된 듯 보이는 현상 뒤에는 엄연히 이치가 있고 규율이 있으니 이러한 규칙성과 불규칙성이 혼재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현상뒤의 실상을 파악하고 현상을 이해함으로써 거짓과 혼란을 극복하고 평안하고 지혜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지혜로운 삶

운명의 흐름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리고 그 흐름은 쉽게 바꿀 수 없습니다. 인생의 행로를 강물의 흐름으로 비유한다면 대운은 강물이 흘러가는 방향입니다. 세운은 강물이 흐르면서 만나는 곳곳의 지형입니다. 한강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데 이 물줄기를 돌려서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게 하려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으로 결코 뜻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같은 물줄기라도 홍수가 잘 나는 지역은 제방을 쌓고 미리 대비함으로써 물을 다스리는 치수(治水)를 할 수 있으니 이처럼 운의 흐름을 미리 보고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상호명 : 도현암  | 대표자 : 송혁    |    주소 : 36-716 경북 안동시 용상동1461-29안동시 용상동 전거리8길 74     |    TEL : 054-853-5306   | E-MAIL : sh5306kr@naver.com

COPYRIGHT © 안동철학원.kr / 안동철학관.kr ALL RIGHT RESERVED